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 ? 호(號) : 서호, 단원, 고면거사, 첨취옹을 사용하였다. 김홍도는 영조 21년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아버지는 김석무(金錫武)이며,성원록에 의하면 무반(武班)의 만호 벼슬을 한 증조부 김진창부터 시작하여 원래 무반이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어려서는 경기도 안산에 칩거 중이던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이자 명문사대부인 표암 강세황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강세황은 당대의 감식가이며 문인화가로 이 두사람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로 시직하여 나중에는 예술적 동지로 강세황이 세상을 떠나는 1791년 김홍도의 나이 47세까지 이어졌다. 단원은 인물, 산수, 신선, 불화, 꽃과 과일, 새와 벌레, 물고기와 게등 모두 묘품( 妙品)에 해당되어 옛사람과 비교해도 대항할 사람이 거의 없었다 또 우리나라의 인물과 풍속을 잘 그려내어 공부하는 선비, 장사꾼, 나그네, 규방, 농부, 누에치는 여자, 이중으로 된 가옥, 겹으로 난 문, 거친 산, 들 의 나무, 등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를 꼭 닮게 그려서 모양이 틀리는 것이 없었으며, 단원은 독창적으로 스스로 알아내어 교묘하게 자연의 조화를 이루었으니 이는 첨부 적인 소질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났다.
김홍도는 일찍 도화서 화원으로 영,정조의 문예부흥기부터 순조 연간 초기 활동한 김홍도는 정조의 신임속에 당대 최고의 화가로 자리잡았다. 40대이후 벼슬살이를 시작하면서 각종 기록화에 풍속화적 요소를 녹여냈다. 정조12년(1788)단원이 44세때 왕명을 받들어 금강산 등 영동 일대를 기행하며 그곳의 명승지를 그렸고, 연풍현감 되기 1년전인 46세때는 수원용주사의 대응전 탱화를 그렸다.
연풍 현감직에서 물러난 51세 이후 김홍도의 그림 세계는 관직 생활을 거치며 변화된 의식을 바탕으로 내용과 형식에서 자유로워졌다. 만년에 이르러 농촌이나 전원 등 생활 주변의 풍경을 사생하는데 관심을 기울였고, 이러한 사경(寫景)산수 속에 풍속과 인물, 영모 등을 가미하여 한국적 서정 과 정취가 짙게 배인 일상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Calen드림.
내~내 건강하세요!!! 2017년 3월 11일(土) 출사. Calen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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