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곳곳의 비경과 건축물, 사람들의 숨결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 책, 전시가 활발하게 소개되는 요즘, '젊은 감각'의 사진가들은 어디에서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발견할까? 나무와 건축물부터 무형문화재와 해녀 그리고 오래된 아파트까지 한국의 정체성과 미를 탐구 중인 5명의 사진가를 소개한다. 그들 작품에는 우리의 정겨운 정서와 풍경은 물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제안도 있다.
창경궁 선인문 프로젝트
"다르게 보니 더 눈부신 그곳"
건축물 찍는 한성필
지난 2009년, 종로 원서동 공간 사옥을 지나던 행인들은 낯선 풍경과 마주했다. 사옥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현수막에 내부 사무실과 계단, 책장과 철문 등을 찍은 사진이 프린트돼 건물 내부가 어떤 구조와 모양으로 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공간 사옥 하면, 사람들이 외관의 적색 벽돌과 담쟁이넝쿨만 생각하잖아요. 최고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물인 만큼 내부까지 자세히 보여주고 싶었어요. 각 공간을 따로 촬영하고 입면도에 따라 사진을 배치한 후 대형 현수막으로 제작했습니다. 시각적 환기를 통해 건축물을 다시 보게 하는 프로젝트지요."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품이 많이 들었다. 산업용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는 최대 사진 사이즈는 폭 5m 정도가 한계라 레이저 접합 같은 특수 공정을 거쳐야 한다. 바람에 구조물이 쓰러지지 않도록 표면에 미세한 구멍이 난 메시 천을 사용하며, 설치 작업에는 크레인을 동원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수막이 설치된 모습을 트럭 등에 올라 대형 카메라로 촬영해 스캔을 한 후 다시 깔끔한 한 장의 사진으로 인화해야 비로소 전 작업이 끝난다. 지난한 작업이지만 아름답고 의미 있는 건축물을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보고 사람들에게도 소개할 수 있다는 점이 오랫동안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다.
'The Ivy Space'
"한국을 건축 강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찬찬히 돌아보면 멋지고 의미 있는 건축물과 문화재가 전국에 정말 많아요. 유홍준의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만 봐도 꼭 한 번 보고 싶은 '보물'이 수두룩하잖아요." 창경궁 선인문 프로젝트도 재미있다. 거대한 현수막 안에 넣은 사진이 포인트. 왼쪽 쪽문에는 황톳길과 그 끝에 아스라이 보이는 창경궁 식물원을, 오른쪽 문 안에는 명정문 등 안쪽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곳의 현판 사진을 차례대로 넣었다. 깊은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 평소엔 별 관심이 없던 내부가 새삼 궁금해지며 안쪽풍경이 보고 싶어진다.
"2004년, 영국에서 유학할 때 본 세인트폴 대성당 보수 공사 가림막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실물 크기로 인화한 성당 사진을 아트 펜스로 만들어 건물 앞쪽에 설치했더라고요. 그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구조물이자 예술품으로 보였어요.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지요. 그때 가림막이나 현수막이 건축물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남한산성 한남루, 남대문, 감은사지삼층석탑, 명동성당 등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는데 구 전남 도청사의 경우 회화 기법까지 동원했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지은 건물.
입구 쪽에 대칭형 벽면과 대리석 돌계단이 남아 있는데 동쪽 측면은 사진으로 찍고, 서쪽 측면은 동쪽 벽면사진과 대칭이 되도록 그림으로 그린 후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으로 만든 한 편의 데칼코마니를 보는 느낌. 빛의 일렁임까지 완벽하게 포착해 완성도가 높다. "우리 고유의 미감과 역사를 응축해서 보여주는 것이 각종 문화재와 건축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창의적 접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식으로 다루고 보여주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니까요. 제 사진의 목적은 '어, 이곳에 이런 건축물도 있었네' 하는 깨달음 같은 걸 주는 거예요. 다행히, 작업하고 싶은 곳이 아주 많습니다."
"사라져가는 문화재가 아닌 그냥 나의 어머니"
해녀 찍는 김흥구
"해녀를 우리나라의 사라져가는 인간문화재처럼 보이게 하고 싶진 않았어요. 고생하는 모습을 강조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분들은 제게 그냥 어머니예요. 이른 아침 희부윰한 안개를 헤치며 바다로 나가고, 집에 오면 자식들의 무탈과 안녕을 기도하는…."오랫동안 촬영을 하면서 진짜 어머니 같은 분도 생겼다. 우도에 사는 공명산 할머니. 젊어 남편과 헤어지고 자식까지 앞서 보낸 그녀는 해녀 무리를 뒤쫓으며 사진을 찍는 그를 자식처럼 아끼고 예뻐해주었다. "처음 제주도에 간 게 대학교 4학년 때였어요. 물질이 모두 생업인지라 사진을 찍겠다고 졸졸 따라다니는 저를 귀찮게 여기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공명산 할머니가 '얘한테 그러지 마라' 하면서 저를 챙겨주셨지요."그에게 제주도는 '트멍'(제주도 방언으로 '틈'이란 뜻) 그 자체였다.
청춘 시절, 감당하기 벅찬 일이 얽히고설켜 바닷바람이라도 쐬고 싶어 무작정 찾아간 곳이 제주도였다. 그렇게 해녀와 만났고, 제주도를 찾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해녀를 향한 애틋한 정이 생겼다. 그렇게 작업을 시작한 것이 올해로 12년째. 집 안과 바닷속에서까지, 해녀의 하루하루가 방대한 기록으로 남았다. 평생 물질만 하고 살아 노후에는 난청과 두통 등 '잠수병'으로 고생하는 분을 보면 병환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를 찍는데 비싼 장비는 필요 없었다. 마음 깊이 좋아하는 어머니는 어떻게 찍어도 예쁜 법이니까. "비비타란 플라스틱 카메라가 있어요. 렌즈도 플라스틱이라 장난감 같아요. 대학생 때 처음 이 카메라를 썼는데 수중 3~4m까지는 문제없어요. 흔들림도 심하고 입자도 거칠지만 그런 느낌이 오히려 더 좋아 지금껏 쓰고 있어요. 지상에서는 니콘 F90X를 쓰는데 렌즈는 하나만 갖고 다녀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푸른 나무' - 부여, '푸른 나무' - 진주, '푸른 나무' - 강화, '푸른 나무' - 섬진강
"내게 나무는 은막의 스타"
나무 찍는 이흥렬
그는 오늘도 우리 산야의 멋지고 아름답고 늠름한 나무를 찾아 나선다. 마음에 드는 나무를 만나면 주변으로 2~10대까지 조명을 설치하고 늦은 밤까지 기다린다. 달이 오르고, 별이 떠 나무가 우아하게 반짝이면 비로소 정성 들여 셔터를 누른다. 카메라 옆에는 늘 와인이나 위스키, 코냑이 있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나무와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술을 홀짝이며 밤이 되길 기다리고, 기분 좋게 사진을 찍은 후, 온기를 느끼며 돌아오는 게 좋다. "충북 수안보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살았는데 마을에 성황당이 있었지요. 바로 옆에는 신령스러운 기운을 내뿜는 고목이 있고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바친 떡과 과일이 제 간식이었지요. 그때부터 나무가 좋았어요(웃음). 3년 전에는 양재천 쪽에 작업실을 냈는데 이유는 단 하나. 그 앞으로 숲이 펼쳐졌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보금자리 아파트 신축으로 인한 길 넓히기 공사 때문에 나무를 다 벤다는 거 아닙니까. 멀쩡한 나무 500그루가 잘릴 판이라 서명 운동을 벌이고 구청 공청회에 나가 발언도 했어요. 결국 숲을 보존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요. 나무를 주제로 작업을 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예요. 전 나무가 지구의 주인공 같아요.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고, 훨씬 많잖아요. 그래서 나무를 은막의 여주인공처럼 멋지게 찍는 겁니다." 그는 "한국 나무에는 뭔가 독립적이고 신령스럽고 정겨운 멋이 있다"고 했다. "알프스 같은 곳은 나무가 산에 묻혀 있잖아요. 우리나라는 마을이나 야트막한 언덕에 홀로 있는 나무가 많아요. 느티나무, 팽나무, 벚나무, 아카시아 등 수종에 따라 매력도 제각각이라 계속 '헌팅'을 다니게 되지요." 그가 찍은 섬진강의 벚나무, 진주의 감나무, 제주도의 팽나무, 강화도의 느티나무는 제각각의 모양과 개성으로 아름답다. 늠름한 남자 같기도, 우아한 여자같기도, 수줍은 소녀 같기도 하다. 별과 달의 조력까지 받으니 더 아름답다.
(왼쪽부터)'만신'김금화 선생, 한국 무용가 이매방 선생
"그분들 자체가 우리의 춤, 소리 그리고 혼"
무형문화재 찍는 이진환
이렇게 활짝 웃고 있는 무형문화재를 본 적이 있었던가? "무형문화재 하면 왠지 무표정하고 근엄한 얼굴만 떠오르지요?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습니다. 무형문화재도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이란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분들 웃게 하는 게 쉽습니까. '나는 안 웃어. 쓸데없이 왜 웃어' 하면서 반감을 드러내는 분도 많았어요. 재롱도 떨고, 춤도 추고, 갑자기 상의를 들춰 올려 배꼽도 보이면서 촬영을 했어요. 장소도 일부러 도심 번화가로 잡았어요. 코엑스, 남대문…, 이분들이 화석 같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사는 '현대인'이란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공연을 앞두고 무대의상을 직접 만드는 '의식'을 치를 만큼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의 국무國舞 이매방 선생, '나라 만신萬神'이라 불리는 서늘한 눈매의 김금화 선생이 파안대소 하는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따뜻하게 와 닿는다. 무형문화재를 찍기 시작한 건 2005년 < 명인에게 길을 묻다 > 란 국악 공연 책자에 들어갈 사진을 찍으면서부터. 국악 하는 후배들은 무서워하고 어려워하는 '대선배님'이지만 사진가 입장이라 아들이나 손주처럼 편하게 다가 설 수 있었다. 일회성 프로젝트로 시작했지만 계속 만나 촬영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명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힘과 분위기도 매력적이었다.
"일본에서는 인간국보가 국빈 대접을 받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사회적 인정과 경제적 지원이 너무 빈약해요. 그분들 개개인이 우리나라의 춤, 소리, 혼 그 자체인데 말이죠. 가야금 산조 중요 무형문화재인 이영희 선생님 칠순 잔치에 갔을 때예요. 즉석에서 김영재 선생이 거문고를 뜯고, 신영희 선생이 춤을 추고, 이춘희 선생이 가락을 했지요. 신명이 체화된 분들이란 생각이 들었어요."지금껏 100여 명의 무형문화재를 찍은 그는 우리나라의 대표 춤꾼 35명을 찍는 프로젝트를 수년째 진행하고 있다. 부채춤 창시자인 김백봉 선생을 비롯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용 대가가 블랙홀처럼 어두운 무대에서 홀로 춤사위를 펼치는 모습을 담았는데 몸짓이 한없이 자유로우면서도 강렬한 힘과 기운이 느껴진다.
"오래된 아파트는 기호의 제국"
'시범' 아파트 찍는 최중원
193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에 지어진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를 찍은 최중원의 사진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450cm에 이르는 큰 폭에 꽉 들어찬 아파트의 정면 사진. 집집마다 복도 쪽에 꺼내 놓은 자전거며 신발장, 과일 상자, 소쿠리, 양파 망, 빨래 등이 그래픽적인 느낌까지 준다. "아파트는 몰개성, 획일성의 상징이지만 시범 아파트라면 달라요.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지어진 아파트는 주인의 취향까지 알 수 있어요. 아파트가 노후되면서 새로 단 창문, 문짝, 현관 등이 어떤 사람이 사는 집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하지요. 그 모습을 숨은그림 찾기하듯 찬찬히 보다 보면 참 재미있단 생각이 들어요."
아파트에 들어찬 가가호호 풍경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촬영은 녹록지 않다. 아파트 한 동을 약 200~300컷으로 면 분할한 후 그 숫자만큼의 사진을 찍어 정교한 합성 과정을 거친다. 크레인까지 대절해 상하좌우 구석구석의 '면'을 정중앙에서 촬영하는 덕분에 거대한 크기의 인화지에 들어간 모든 집의 풍경이 돋보기를 댄 듯 또렷하게 보인다. 오래된 아파트를 찍는 가장 큰 이유는 아카이브의 필요성에 대한 절감 때문이다.
"오래된 아파트를 찍겠다고 결심하고 국가기록원, 토지대장, 등기부등본, 옛날 신문 등을 열람하며 해당 아파트에 대해 조사했는데 건질 만한 정보가 별로 없었어요. 오래된 아파트는 수많은 기호를 내포하고 있어요. 당시의 사회 시스템, 건축 기술, 주거 형태, 부동산 정책 등 많은 것을 보여주지요. 1930년대에 지은 충정 아파트의 경우 한반도 역사 그 자체예요. 일제시대에는 일본 고위 관료의 거주지로,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 장교 숙소로, 서울 수복 후에는 미군 장교 숙소로 쓰였습니다. 이런 내용을 사진으로라도 최대한 자세하게 남겨놔야 할 것 같았어요. 아파트 부분부분까지 세세하게 보이도록 촬영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지금껏 작업한 아파트는 서울을 중심으로 약 40곳. 그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오래된 아파트"라면서 "아파트 역시 중요 건축물로 지정해 제대로 관리를 할 필요가 있어요" 라고 힘주어 말했다.
기자/에디터 : 정성갑
다음에서 옮겨왔음-2013년10월30일.
창경궁 선인문 프로젝트
"다르게 보니 더 눈부신 그곳"
건축물 찍는 한성필
지난 2009년, 종로 원서동 공간 사옥을 지나던 행인들은 낯선 풍경과 마주했다. 사옥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현수막에 내부 사무실과 계단, 책장과 철문 등을 찍은 사진이 프린트돼 건물 내부가 어떤 구조와 모양으로 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공간 사옥 하면, 사람들이 외관의 적색 벽돌과 담쟁이넝쿨만 생각하잖아요. 최고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물인 만큼 내부까지 자세히 보여주고 싶었어요. 각 공간을 따로 촬영하고 입면도에 따라 사진을 배치한 후 대형 현수막으로 제작했습니다. 시각적 환기를 통해 건축물을 다시 보게 하는 프로젝트지요."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품이 많이 들었다. 산업용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는 최대 사진 사이즈는 폭 5m 정도가 한계라 레이저 접합 같은 특수 공정을 거쳐야 한다. 바람에 구조물이 쓰러지지 않도록 표면에 미세한 구멍이 난 메시 천을 사용하며, 설치 작업에는 크레인을 동원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수막이 설치된 모습을 트럭 등에 올라 대형 카메라로 촬영해 스캔을 한 후 다시 깔끔한 한 장의 사진으로 인화해야 비로소 전 작업이 끝난다. 지난한 작업이지만 아름답고 의미 있는 건축물을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보고 사람들에게도 소개할 수 있다는 점이 오랫동안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다.
"한국을 건축 강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찬찬히 돌아보면 멋지고 의미 있는 건축물과 문화재가 전국에 정말 많아요. 유홍준의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만 봐도 꼭 한 번 보고 싶은 '보물'이 수두룩하잖아요." 창경궁 선인문 프로젝트도 재미있다. 거대한 현수막 안에 넣은 사진이 포인트. 왼쪽 쪽문에는 황톳길과 그 끝에 아스라이 보이는 창경궁 식물원을, 오른쪽 문 안에는 명정문 등 안쪽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곳의 현판 사진을 차례대로 넣었다. 깊은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 평소엔 별 관심이 없던 내부가 새삼 궁금해지며 안쪽풍경이 보고 싶어진다.
"2004년, 영국에서 유학할 때 본 세인트폴 대성당 보수 공사 가림막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실물 크기로 인화한 성당 사진을 아트 펜스로 만들어 건물 앞쪽에 설치했더라고요. 그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구조물이자 예술품으로 보였어요.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지요. 그때 가림막이나 현수막이 건축물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남한산성 한남루, 남대문, 감은사지삼층석탑, 명동성당 등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는데 구 전남 도청사의 경우 회화 기법까지 동원했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지은 건물.
입구 쪽에 대칭형 벽면과 대리석 돌계단이 남아 있는데 동쪽 측면은 사진으로 찍고, 서쪽 측면은 동쪽 벽면사진과 대칭이 되도록 그림으로 그린 후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으로 만든 한 편의 데칼코마니를 보는 느낌. 빛의 일렁임까지 완벽하게 포착해 완성도가 높다. "우리 고유의 미감과 역사를 응축해서 보여주는 것이 각종 문화재와 건축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창의적 접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식으로 다루고 보여주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니까요. 제 사진의 목적은 '어, 이곳에 이런 건축물도 있었네' 하는 깨달음 같은 걸 주는 거예요. 다행히, 작업하고 싶은 곳이 아주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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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찍는 김흥구
"해녀를 우리나라의 사라져가는 인간문화재처럼 보이게 하고 싶진 않았어요. 고생하는 모습을 강조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분들은 제게 그냥 어머니예요. 이른 아침 희부윰한 안개를 헤치며 바다로 나가고, 집에 오면 자식들의 무탈과 안녕을 기도하는…."오랫동안 촬영을 하면서 진짜 어머니 같은 분도 생겼다. 우도에 사는 공명산 할머니. 젊어 남편과 헤어지고 자식까지 앞서 보낸 그녀는 해녀 무리를 뒤쫓으며 사진을 찍는 그를 자식처럼 아끼고 예뻐해주었다. "처음 제주도에 간 게 대학교 4학년 때였어요. 물질이 모두 생업인지라 사진을 찍겠다고 졸졸 따라다니는 저를 귀찮게 여기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공명산 할머니가 '얘한테 그러지 마라' 하면서 저를 챙겨주셨지요."그에게 제주도는 '트멍'(제주도 방언으로 '틈'이란 뜻) 그 자체였다.
청춘 시절, 감당하기 벅찬 일이 얽히고설켜 바닷바람이라도 쐬고 싶어 무작정 찾아간 곳이 제주도였다. 그렇게 해녀와 만났고, 제주도를 찾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해녀를 향한 애틋한 정이 생겼다. 그렇게 작업을 시작한 것이 올해로 12년째. 집 안과 바닷속에서까지, 해녀의 하루하루가 방대한 기록으로 남았다. 평생 물질만 하고 살아 노후에는 난청과 두통 등 '잠수병'으로 고생하는 분을 보면 병환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를 찍는데 비싼 장비는 필요 없었다. 마음 깊이 좋아하는 어머니는 어떻게 찍어도 예쁜 법이니까. "비비타란 플라스틱 카메라가 있어요. 렌즈도 플라스틱이라 장난감 같아요. 대학생 때 처음 이 카메라를 썼는데 수중 3~4m까지는 문제없어요. 흔들림도 심하고 입자도 거칠지만 그런 느낌이 오히려 더 좋아 지금껏 쓰고 있어요. 지상에서는 니콘 F90X를 쓰는데 렌즈는 하나만 갖고 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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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나무는 은막의 스타"
나무 찍는 이흥렬
그는 오늘도 우리 산야의 멋지고 아름답고 늠름한 나무를 찾아 나선다. 마음에 드는 나무를 만나면 주변으로 2~10대까지 조명을 설치하고 늦은 밤까지 기다린다. 달이 오르고, 별이 떠 나무가 우아하게 반짝이면 비로소 정성 들여 셔터를 누른다. 카메라 옆에는 늘 와인이나 위스키, 코냑이 있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나무와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술을 홀짝이며 밤이 되길 기다리고, 기분 좋게 사진을 찍은 후, 온기를 느끼며 돌아오는 게 좋다. "충북 수안보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살았는데 마을에 성황당이 있었지요. 바로 옆에는 신령스러운 기운을 내뿜는 고목이 있고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바친 떡과 과일이 제 간식이었지요. 그때부터 나무가 좋았어요(웃음). 3년 전에는 양재천 쪽에 작업실을 냈는데 이유는 단 하나. 그 앞으로 숲이 펼쳐졌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보금자리 아파트 신축으로 인한 길 넓히기 공사 때문에 나무를 다 벤다는 거 아닙니까. 멀쩡한 나무 500그루가 잘릴 판이라 서명 운동을 벌이고 구청 공청회에 나가 발언도 했어요. 결국 숲을 보존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요. 나무를 주제로 작업을 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예요. 전 나무가 지구의 주인공 같아요.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고, 훨씬 많잖아요. 그래서 나무를 은막의 여주인공처럼 멋지게 찍는 겁니다." 그는 "한국 나무에는 뭔가 독립적이고 신령스럽고 정겨운 멋이 있다"고 했다. "알프스 같은 곳은 나무가 산에 묻혀 있잖아요. 우리나라는 마을이나 야트막한 언덕에 홀로 있는 나무가 많아요. 느티나무, 팽나무, 벚나무, 아카시아 등 수종에 따라 매력도 제각각이라 계속 '헌팅'을 다니게 되지요." 그가 찍은 섬진강의 벚나무, 진주의 감나무, 제주도의 팽나무, 강화도의 느티나무는 제각각의 모양과 개성으로 아름답다. 늠름한 남자 같기도, 우아한 여자같기도, 수줍은 소녀 같기도 하다. 별과 달의 조력까지 받으니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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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 자체가 우리의 춤, 소리 그리고 혼"
무형문화재 찍는 이진환
이렇게 활짝 웃고 있는 무형문화재를 본 적이 있었던가? "무형문화재 하면 왠지 무표정하고 근엄한 얼굴만 떠오르지요?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습니다. 무형문화재도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이란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분들 웃게 하는 게 쉽습니까. '나는 안 웃어. 쓸데없이 왜 웃어' 하면서 반감을 드러내는 분도 많았어요. 재롱도 떨고, 춤도 추고, 갑자기 상의를 들춰 올려 배꼽도 보이면서 촬영을 했어요. 장소도 일부러 도심 번화가로 잡았어요. 코엑스, 남대문…, 이분들이 화석 같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사는 '현대인'이란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공연을 앞두고 무대의상을 직접 만드는 '의식'을 치를 만큼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의 국무國舞 이매방 선생, '나라 만신萬神'이라 불리는 서늘한 눈매의 김금화 선생이 파안대소 하는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따뜻하게 와 닿는다. 무형문화재를 찍기 시작한 건 2005년 < 명인에게 길을 묻다 > 란 국악 공연 책자에 들어갈 사진을 찍으면서부터. 국악 하는 후배들은 무서워하고 어려워하는 '대선배님'이지만 사진가 입장이라 아들이나 손주처럼 편하게 다가 설 수 있었다. 일회성 프로젝트로 시작했지만 계속 만나 촬영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명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힘과 분위기도 매력적이었다.
"일본에서는 인간국보가 국빈 대접을 받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사회적 인정과 경제적 지원이 너무 빈약해요. 그분들 개개인이 우리나라의 춤, 소리, 혼 그 자체인데 말이죠. 가야금 산조 중요 무형문화재인 이영희 선생님 칠순 잔치에 갔을 때예요. 즉석에서 김영재 선생이 거문고를 뜯고, 신영희 선생이 춤을 추고, 이춘희 선생이 가락을 했지요. 신명이 체화된 분들이란 생각이 들었어요."지금껏 100여 명의 무형문화재를 찍은 그는 우리나라의 대표 춤꾼 35명을 찍는 프로젝트를 수년째 진행하고 있다. 부채춤 창시자인 김백봉 선생을 비롯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용 대가가 블랙홀처럼 어두운 무대에서 홀로 춤사위를 펼치는 모습을 담았는데 몸짓이 한없이 자유로우면서도 강렬한 힘과 기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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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 아파트 찍는 최중원
193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에 지어진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를 찍은 최중원의 사진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450cm에 이르는 큰 폭에 꽉 들어찬 아파트의 정면 사진. 집집마다 복도 쪽에 꺼내 놓은 자전거며 신발장, 과일 상자, 소쿠리, 양파 망, 빨래 등이 그래픽적인 느낌까지 준다. "아파트는 몰개성, 획일성의 상징이지만 시범 아파트라면 달라요.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지어진 아파트는 주인의 취향까지 알 수 있어요. 아파트가 노후되면서 새로 단 창문, 문짝, 현관 등이 어떤 사람이 사는 집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하지요. 그 모습을 숨은그림 찾기하듯 찬찬히 보다 보면 참 재미있단 생각이 들어요."
아파트에 들어찬 가가호호 풍경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촬영은 녹록지 않다. 아파트 한 동을 약 200~300컷으로 면 분할한 후 그 숫자만큼의 사진을 찍어 정교한 합성 과정을 거친다. 크레인까지 대절해 상하좌우 구석구석의 '면'을 정중앙에서 촬영하는 덕분에 거대한 크기의 인화지에 들어간 모든 집의 풍경이 돋보기를 댄 듯 또렷하게 보인다. 오래된 아파트를 찍는 가장 큰 이유는 아카이브의 필요성에 대한 절감 때문이다.
"오래된 아파트를 찍겠다고 결심하고 국가기록원, 토지대장, 등기부등본, 옛날 신문 등을 열람하며 해당 아파트에 대해 조사했는데 건질 만한 정보가 별로 없었어요. 오래된 아파트는 수많은 기호를 내포하고 있어요. 당시의 사회 시스템, 건축 기술, 주거 형태, 부동산 정책 등 많은 것을 보여주지요. 1930년대에 지은 충정 아파트의 경우 한반도 역사 그 자체예요. 일제시대에는 일본 고위 관료의 거주지로,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 장교 숙소로, 서울 수복 후에는 미군 장교 숙소로 쓰였습니다. 이런 내용을 사진으로라도 최대한 자세하게 남겨놔야 할 것 같았어요. 아파트 부분부분까지 세세하게 보이도록 촬영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지금껏 작업한 아파트는 서울을 중심으로 약 40곳. 그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오래된 아파트"라면서 "아파트 역시 중요 건축물로 지정해 제대로 관리를 할 필요가 있어요" 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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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옮겨왔음-2013년10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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